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_박완서
국어 모의고사 성적이 잘 안 나와서 한 달전 연습 겸 2016학년도 11월 고2 국어 모의고사를 풀던 중 뒷부분에 ‘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의 일부분이 문제로 실려 있었다. 주인공의 세상에 대한 비판적이고 비유적인 생각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들어 모의고사를 모두 푼 후, 인터넷에서 ‘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 책을 찾아보았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박완서 작가의 단편 소설 전집에 단편 소설 ‘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을 보고 인터넷 e book 도서관에 회원가입해서 빌려 읽게 되었다.
이 단편 소설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면직물 공장을 물려받았는데, 노동자들에게 싼 값의 임금을 주고 최대한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일에 멀미를 느끼게 된다. 주인공은 면직물 공장이 망한 후에도 계속 여러 사업을 진행하면서 같은 업계 다른 사람들의 표절, 탐욕스러운 행동들에서도 멀미를 느낀다. 그는 계속해서 그가 진행하는 사업들로부터 도망가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거의 탕진한다. 그의 아내는 임신한 상태이며 그에게는 아내 뱃속 아이를 포함해 세 아이가 있어 공장에서 벗어나도 해방감보다 책임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는 결국 아내에게 여행을 핑계로 병원에 가 정관 절제 수술을 받는다. 큰 고통과 악몽을 견디며 포기한 생식 능력으로부터 얻은 해방감은, 얼마 뒤 두 아이의 죽음과 뱃속 아이의 유산을 통해 배신감으로 돌아온다. 그는 그의 창고에서 죽은 두 아이를 생각하며 두 아이가 살아있을 때보다 더 가까워짐을 느끼고, 그의 아내는 상상임신을 한다. 그녀는 자신의 뱃속에 아이를 위해 집을 팔고 이사할 것을 제안하고, 그는 그녀에게 그녀가 상상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대신 이사하는 것을 택한다.
이는 그의 장난감 사업과 당장의 아내의 건강을 고려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는 핑계를 통해, 당장의 고통이 두려워 선택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사하게 된 집은 우연히 떼돈을 벌게 되어 얻게 된 부를 자신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괴롭히며 즐기는 데에 쓰는 무식한 인간이 사는 집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부잣집 인간은 뒷집에 살던 사람들에게 청사진을 펼쳐 들고 자신의 땅을 침범한 것에 대한 부당한 대가를 요구하며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부를 즐겼다. 그래서 주인공이 이사할 집의 주인은 삼 년 동안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아내에게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이사한 후 얼마 뒤, 예상한대로 부잣집 인간이 그를 불렀다. 부잣집 인간이 청사진을 펼쳐들고 같은 수법으로 돈을 요구하는데, 주인공은 그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낀다. 주인공은 부잣집 인간이 얘기하는 내내 전혀 집중하지 않는다. 그의 정신은 온통 창밖에 두 아이들에게 뺏겨 있다. 부잣집 인간은 그가 전 뒷집 주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유식해 보이려 애쓰지만 오히려 주인공의 유식하고 합리적인 말에 당황하고 당한다. 주인공은 집으로 가려던 찰라에 부잣집 인간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주인공은 부잣집 인간을 주인공의 사업들 뒤에 숨어서 멀미를 일으키던 징그러운 괴물로서, 그리고 탐욕이니 비열이니 파렴치니 하는 추상명사의 뼈와 살을 갖춘 모습으로서 인식한다. 그는 그동안 자신을 괴롭힌 멀미의 정체와 본질이 생각보다 보잘것없음을 느끼고 신선한 기쁨을 맛본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뒤, 그의 시끄러운 작업 소리를 줄여줄 공간을 위해 지하실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땅을 판다. 곧 큰 장마가 닥쳐 주인공은 땅파는 작업을 그만둔다. 부잣집 인간은 자신의 지하실 공간을 주인공 집 앞 마당으로 넓히려 땅을 파던 중 땅이 무너져 죽게 된다. 아내는 자신이 또 다시 유산됐다며 절망한다. 그는 어째서인지 또 다시 심한 멀미를 느끼지만, 이번에는 피할 것이 아니라 맞서서 극복할 것으로 인식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주인공의 인생은 굉장히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평생 멀미하게 한 것들의 본질을 깨닫게 되면서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맞서 극복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아직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해산 바가지’와 이 작품밖에 읽어보지 못 했지만, 두 작품 모두 큰 감명을 받아서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을 더 읽어볼까 한다.
어느 쓸쓸한 사내 이야기 중
"나는 아내를 거칠게 밀치고 문득 심한 멀미를 느꼈다. 온 세상이 낡은 차가 되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마구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나는 또다시 그놈의 지긋지긋한 멀미를 느낀 것이다. 그러나 도피하고 굴종해야 할 것으로 느낀 것이 아니라 맞서서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것으로서 느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사람 속에 도사린 끝없는 탐욕과 악의에 대해 좀더 알아야겠다. 옳지 못할수록 당당하게 군림하는 것들의 본질을 알아내야 겠다. 그것들의 비밀인 허구와 허약을 노출시켜야 겠다. 설사 그것을 알아냄으로써 인생에 절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멀미일랑 다시는 말아야겠다. 다시는 비겁하지는 말아야겠다."